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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인물, 이효석

이효석
(1907.02.23~1942.05.25)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본마을에서 태어나 1914년 8세때 외학을 하게 되어 봉평에서 100리가 떨어진 군 소재지 평창공립보통학교 (현 평창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현 경기고등학교)를 무시험으로 입학하였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젊은 시절 이효석은 자신의 가난하고 빈한한 처지를 스스로 '가난뱅이 작가'라고 자조했다.
경성 토호였던 처가에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백방으로 직업을 구하다가 중학교 은사가 주선해준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했다.
그러나 이곳은 문인들의 작품을 사전검열 하는 곳이었다. 동료들의 지탄이 빗발치자 이효석은 열흘 만에 조선총독부를 그만 두었다.

1928년 이효석은 < 조선지광 >에 단편 < 도시와 유령 >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후로 < 행진곡 >, < 기우 > 등을 발표 하면서 구인회에 참가하여 < 돈(豚) >, < 수탉 >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4년 평양숭실전문학교의 국문학과 영문학 교수가 된 후로 강의활동과 함께 < 산 >, < 돌 >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1930년대 조선의 시골사회를 아름답게 묘사한 < 메밀꽃 필 무렵 >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작 이효석의 삶은 시골과 거리가 멀었다. 서양영화를 즐겨 보았고, 서양에서 온 가수나 무용단 공연을 보며 넋을 잃기도 하는 도시인의 삶을 살았다.
서구적 분위기를 풍기는 < 장미 병들다 >, 동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는 < 화분 > 등을 발표하여 성(性)의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효석은 1940년 부인과 차녀를 잃고 실의에 빠져 건강을 해치다가 1942년 5월25일 마침내 결핵수막염으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