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스토리

평창의 역사, 인물, 관광지, 그리고 지난 동계올림픽의 추억까지 감상해보세요.

Pyeongchang story

평창 역사스토리

평창 인물스토리

평창 관광스토리

동계올림픽 Memory

평창 관광지 안내

오대산 국립공원

평창의 대표적인 자연 관광명소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등산로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오대산의 상징인 상원사와 월정사는 중요한 불교사찰로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각각의 사찰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과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팔석정

팔석정은 평창군 봉평읍 백옥포리 홍정천의 물가에 위치하고 있는 명승지다.
팔석정 밑에 있는 구룡소九龍沼는 용 아홉 마리가 등천하였다는 곳이고, 팔석정으로 들어가는 소는 도래소到來沼라고 부른다. 

태산(泰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것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태산가>를 지은 양사언(楊士彦)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 팔석정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인 양사언은 명종 1년인 1546년 문과에 급제한 후 함흥(咸興)과 평창(平昌) 그리고 강릉(江陵), 회양(淮陽), 안변(安邊), 철원(鐵原) 등 강원도와 함경도 일대 8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넓은 들판에 높이 연기 피어 오르고
지는 해 수평선 아래로 지는구나.
남으로 날아온 기러기에게 묻노니
혹 나에게 부쳐 온 집 편지는 없느냐.”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중 그 당시에 강릉부 관할이던 이곳에 이르렀다. 
아담하면서도 그 자연경치가 빼어난 풍광에 감탄하여 하룻동안만 머물다 가고자 하였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정사도 잊은 채 여드레 동안을 신선처럼 자유로이 노닐며 경치를 즐기다가 갔다는 곳이다. 
그 뒤 양사언은 이곳에 팔일정八日亭이란 정자를 세우고 매년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세 차례 씩 찾아와서 시상詩想을 다듬었다고 한다.

판관대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白玉浦里)의 '판관대(判官垈)'는 신사임당이 율곡선생을 잉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재직한 수운판관(水運判官)을 따서 '판관대(判官垈)'라 이름지었는데, 수운판관이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배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관직이다.

이원수는 사임당 신씨와 결혼 한 후 처가인 강릉에서 과거를 보러 서울을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오고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신사임당은 과거 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白玉浦里)에 거처를 정하고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

이원수가 인천에서 수운 판관을 지내던 무렵 신사임당을 비롯 그의 식구들이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 봉평의 판관대에 머물렀다.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이원수가 가족들이 살고 있던 봉평으로 오던 중이었다. 평창군 대화면의 한 주막에서 여장을 풀게 되었는데, 주막 여주인이 그 전날 밤 용龍이 가슴에 가득히 안겨 오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하늘이 점지해주는 뛰어난 인물을 낳을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는 것을 짐작한 주모는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원수가 그 주막에 들어왔는데, 일이 잘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날 그 주막에는 손님이 이원수 뿐이었다. 주모가 이원수를 바라보자 그의 얼굴에 서린 기색이 남달랐다. 주모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이원수를 하룻밤을 모시려고 했으나 그의 거절이 완강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무렵 친정 강릉에 가 있던 신사임당도 역시 똑 같이 용이 품안으로 안기는 꿈을 꾸고는, 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140리 길을 걸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주모의 청을 거절한 이원수도 그날 밤 집에 도착하여 부부간에 회포를 풀었는데, 이날 바로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한 것이다.

율곡 이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고 1548년(명종 3) 13세로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또한 천도책을 지어 별시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전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졌다. 33세에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하여 〈명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고 34세에 〈동호문답〉을 지어 올렸다. 47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고 48세에 〈시무육조〉를 계진하고 십만 양병을 주청 하였다.

육백마지기

평창 미탄면에 위치한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축구장 여섯 개 정도를 합쳐 놓은 넓은 초원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평창 여행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오늘날 육백마지기는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산 정상이자 자연 친화적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대형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육백마지기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6월에서 7월이다. 일명 ‘계란프라이꽃’ 이라 불리는 샤스타데이지가 만개하여 넓은 초원을 뒤덮어 더욱 아름답다.

육백마지기는 계절마다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 봄과 여름에는 초록빛으로 불든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과 함께 그림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가을에는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 겨울에는 눈 덮인 언덕 위에서 색다른 설경을 경험할 수 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대형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육백마지기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6월에서 7월이다.
아담한 성의 모양 조형물, 산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지개 의자 등 곳곳에 포토존이 자리한다.